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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거든 그녀 옆에 묻어주오!

by mindman 2013. 12. 27.




이천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리는 성탄절(聖誕節)이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몇년 전 써놓았던 하나의 이야기가 크리스마스와 주제에서 연관성이 있어서 공개합니다. 아름다운 날 되시기 바랍니다.





나 죽거든 그녀 옆에 묻어주오!


심훈선생의 '상록수'라는 소설에는 한 쌍의 연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사람은 일제치하에서 우리 농촌을 계몽시키기 위해서 각자의 고장에서 열심히 농민들을 가르칩니다. 이 두 사람은 이렇게 교육운동을 하다가 결혼하기로 약속했던 약혼자들이었습니다. 1930년대 중반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며, 계몽활동을 하던 여인은 스물여섯의 꽃다운 나이에 몹쓸 병에 걸려서 세상을 등지고 맙니다.

이 이야기에 크게 감명받은 소설가 심훈은 신들린 듯한 '신필'로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로 승화시킵니다. 이 대하 장편소설을 원고지에 쓰는데 몇일뿐이 안걸렸다고 합니다.

"아버지여, 당신이 보내신 귀한 따님을 왜 어느새 부르려 하십니까? 그 누이는 무식한 저희들을 위해 뼈가 깎이도록 일을 했습니다. 육신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는 그 시각까지 불쌍한 조선의 자녀들을 위해서 걱정을 했습니다. 주여! 그는 열매도 맺어보지 못한 순결한 처녀입니다. 다만 당신 한 분을 의지하고 동족을 사랑해 몸을 바쳤습니다."

(소설 '상록수'에서)

동경 유학 중 약혼자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남자는 슬픔의 오열을 하였고......

그 후 그는 약혼자의 제자와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반세기가 흘러 그가 임종 때 했던 유언입니다. 그 자손들은 반대를 했지만, 그 부인은 유지를 받들어 옛 약혼자의 묘소 옆에 자기 남편을 안장합니다. 이제 소설명 '동혁'과 '영신'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죽어서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실화입니다. 젊어서 세상을 등져야했던 비운의 여류 교육가이자 계몽운동가인 '최용신'선생과 샘골학원 이사장이자 전 조선대학교 교수였던 김학준선생의 스토리입니다.

이 최용신선생이 당시에 농촌학교를 열었던 곳이 바로 전철 4호선 '상록수'역 근처의 '샘골교회'입니다. 지금은 이 선생님의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고, 그 앞에 죽어서 사랑을 이뤘던 두 분의 묘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농촌계몽가 최용신선생님과 김학준선생님 등 수많은 교육가와 당시에 독립운동을 지원하던 숨은 공로자가 있습니다. 현재 경기도 군포시 둔대동 434번지에 위치한 이 전통 한옥의 주인이셨던 박용덕님입니다. 천석이나 이천석군이었던 이 분은 자신의 자제에게 신학문을 가르치기 위해서 '배움터'로 교회를 지어줬고, 당시(1903년)에 지었던 두 교회가 바로 최용신선생님이 활동했던 샘골교회(천곡교회)와 이 곳 둔대교회입니다.


이미 그 분은 가셨지만 그 분이 세우셨던 그곳들은 시대를 지나며 우리 겨례에게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박용덕님의 고택 옆모습입니다.


제가 농림축산부의 홍보대사로 선발되기 전부터 저는 이 곳 대야미의 농촌을 이미 6년째 취재하고 있었는데요.


작년 10월에 이곳을 지나다가 무척 작은 교회를 발견했고, 그 앞에서 돌을 깨서 땅을 평평하게 고르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은 이 교회의 담임목사님과 부목사님이었습니다.

이 분들께 인사를 하고, 커피 한 잔을 얻어먹고, 이 교회의 역사와 샘골교회의 역사를 들으며 참 인상깊어했었고, 그것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

오래전 그 모습을 그대로를 간직하지 못한 교회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봤습니다(오래 전 보수공사를 하였는데, 시멘트로 하다보니 옛모습을 많이 상실했습니다). 우리 농촌교육의 산실이었고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이 '둔대교회'가 말입니다.

시중에는 떵떵거리는 삐까번쩍한 건물의 신흥교회들이 판을 치는 지금, 오래 된 유서깊고 뜻 깊은 이 교회는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백년전 이 교회와 샘골교회의 앞마당에 심었다던 은행나무에서 다시 교회를 바라 보았습니다.


녹슨 철골 구조의 십자가 첨탑은 이 교회의 경제 사정을 대변해주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해가 바뀌어, 저는 농어촌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게 되었고........

어떻게든 농어촌의 좋은 생산품들을 도시민들에게 선보이려고 애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사는 경기도 군포시에 제가 다니는 교회의 1층에서 '우리 농산물 시식회 및 행운추첨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제가 다니는 교회말고, 바로 이 '둔대교회'를 그 '진입점'으로 삼았습니다.

그 옛날 우리 국민의 무지를 깨우치고, 항일운동을 하던 이 곳에 21세기 신지식 청년농부들을 데리고 인사차 들렀습니다. 그리고 이 담임목사님께 '축복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위의 분들 중에 농민은, 일등고구마 '박종화'님, 오색농장 큰 아들 김민호님, 상보안 농원 숙종대마왕 최숙종님 그리고 꽃남 충남 예산의 꽃밭들농장의 박상호님입니다.


농민 서포터즈로 뽑힌 '농민기자'이기도 한 이 사람들은 둔대교회 담임목사이신 '강인태'님의 옛날 이야기를 취재했습니다.


본래 농과대학 출신이었다가 신학을 하신 목사님답게, 우리 농촌의 아픈 점에 대해서 깊이 공감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옆의 난로에서는 일등고구마가 기증한 고구마가 먹기 좋게 익어갑니다.^^


경기도 군포시의 고재영빵집에서는 이 교회에 나오시는 할머니들을 위해서 달콤한 빵을 준비했습니다. ^.^ 윗 분 중 왼쪽 분은 예전 최용신선생님의 제자로 그 분의 배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분의 상여가 나갈 때 그 뒤를 좇던 어린 소녀였다고 하던데...... 이젠, 9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습니다.


농촌의 청년들은 이 곳에 필요할 수 있는 '식량'을 가져와 드렸지요. 고구마, 호박, 쌀, 현미쌀, 배, 배즙 등 말입니다.

뒷뜰에는 고양이와 강아지가 평화롭게 지내고 있더군요.


아침에 빵을 굽고 약간 늦게 찾아온 고재영빵집의 고재영기자(군포시민신문 시민기자)가 또 열심히 취재를 합니다. 이 사람은 무척 열성적입니다.


이 작고 오래된 교회에서 말입니다.


처마 밑에 교회 현판이 걸려있지 않았다면 그냥 낡고 오래된 옛집으로 알았겠지요.


이곳의 교인과 교역자들은 케노시스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케노시스란 '하나님의 자기 비우심'이라는 뜻으로 자기를 부정하고 비우며 하나님 사랑, 예수님 사랑을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부와 명성을 쌓아가고 교인을 이용하여 배를 불리는 기성교회와는 다른 모습이지요.

이들은 가난합니다. 그러나 정직합니다.

이들은 열심입니다. 그러나 욕심을 버렸습니다.

이들은 21세기 소외와 단절의 '영적인 시대'에 교회 계몽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농촌 계몽을 할 미래의 농촌 지도자들이 이 곳을 방문하여, '축복기도'를 받고 장도에 올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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